(서언)
하나님의 최고 사랑은 사명자를 보내 세상을 구원시킨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셨다.
과거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 하리라” 하시며 그 후에 곧 죽을 자를 치료해 주셨다. 어떤 자가 와서 예수께 묻되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라고 하니 예수님은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답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복음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바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뜻을 이루려 하심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이런 예수님을 본으로 삼고 실천하셨다. 그는 무엇이든지 끝까지 열심히 행하며 성자께서 절대적으로 동행하심을 믿었다. 결국 성삼위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이루었다. 선생님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인간에게 합당하게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려 줄 때 인간이 그 말씀대로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씀했다.
제1부 자연수련원 월명동
제2부 성자의 말씀 집필
제3부 살아나는 예술과 신앙
제4부 평화 스포츠 실현
제5부 세계를 평화로 하나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내가 만나는 곳, 월명동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세계적인 신령한 명소, 월명동(月明洞). 이곳은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자연수련원으로, 5만 여명을 수용하는 대(大) 자연성전이 있다.
선생의 고향인 이곳은 원래 첩첩산중 인적 드문 외로운 땅이었다. 1989년, 선생은 수 천 명의 제자들과 자유롭게 모여 기도할 성전을 물색했다. 이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뜻이 있는 곳”이라며, 선생이 20년간 수도생활을 했던 월명동을 개발하라고 계시했다. 그리하여 선생은 제자들과 15년간 월명동 건축에 힘을 쏟았다. 기도함으로 매일 하나님의 구상을 받아 건축현장을 총 지휘했다. 밤과 낮, 계절에 상관없이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세계 유일무이한 돌조경 야심작, 거대 팔각정과 호수, 국제규격 운동장과 대 자연성전 잔디밭, 기적의 약수, 건축물 성자사랑의 집 등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웅장한 돌조경과 자연성전의 비경, 그리고 성삼위를 느끼고자 한다면 월명동으로 발길을 옮겨보라.
하나님의 음성 듣고 건축하다.
“돌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쌓을 것이다”
처음 선생은 지금의 돌조경 자리에 콘크리트 계단을 만들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뒷동산에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앉아 기도할 때 고통이 사라졌다. 어떻게 공사를 해야 되나 고심하며 앞을 응시한 순간 홀연히 영안이 열리며 지금의 돌조경 모습이 선연히 보였다.
그 순간 “이와 같이 돌로 웅장하며 아름답고 신비하게 쌓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선생은 하나님이 보여준 그 돌조경의 모습을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이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르게 한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8장 5절) 월명동도 그러했다. 선생은 하나님이 보이신 본을 따라 웅장한 돌들로 조경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0여 년 동안 공을 쏟아 지금의 돌조경을 완성했다. 돌조경 가로길이는 약 200m, 높이는 약 35m , 세계 최대의 돌조경이다. 수백 개의 자연 석들과 수십 그루의 소나무, 꽃들이 이뤄낸 조화는 한마디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다.
야심작에 얽힌 사연
“돌은 무너져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돌조경을 마주하고 볼 때, 왼편은 이름이 있다. 바로 ‘야심작’. 이는 ‘하나님의 야심작’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선생에게 말한 이름이다. 야심작은 수십 수 백 톤의 거대한 돌들이 높이 솟아 극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준다. 야심작에는 사연이 서려있다. 처음 선생은 깎아지른 산 위 야심작 터에 수십 수 백 톤의 돌들을 세우려니 쉽지 않음을 느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조경이었기에, 선생은 새로운 조경공법을 창안해야 했고, 연구 끝에 결국 성공시켰다.
지금의 형상으로 완성하기까지 야심작은 다섯 번, 무너졌다. 그때마다 선생은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역사적 성전이었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여섯 번을 쌓아 올린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내 영은 무너지지 않았다” 당시 선생의 칠전팔기 정신이 담긴 날 선 말씀이다. 무너지면 쌓고 무너지면 쌓기를 반복할 때마다 선생과 제자들의 눈물과 땀방울, 기도가 쌓이고 쌓여 더욱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야심작으로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의 구상으로 만들어진
월명동 지형 형상
월명동은 해발 400m의 높은 고지대다. 인근에 위치한 인대산 정상에서 보면 월명동은 ‘보좌 형상’이다. 2014년 6개월의 절식(絶食)기도가 끝나기까지 이틀이 남은 어느 날, 그 형상의 신비함에 선생은 깊이 기도했다. 하나님은 “산과 바위, 그리고 지대의 형상은 인간이 만들 수 없다. 내가 창조한다. 월명동은 뜻이 있어 보좌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했다. 더불어 “이는 천국에 있는 나의 백보좌를 상징한다”고 했다. (요한계시록 7장11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선생은 기절할 듯 놀라며 감탄했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떨려왔다. 이어 하나님은 “보좌형상으로 타고난 월명동을 따라
자연성전에도 나의 구상으로, 보좌 형상의 돌조경 야심작을 만들게 했다”고 밝히셨다. 이 때 선생은 돌조경 야심작의 형상이 보좌의 모습으로 세워졌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는 보좌! 그 보좌의 형상이 월명동 지형에, 돌조경 야심작에 또렷이 새겨진 것이다. 선생은 야심작을 세울 당시에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제야 선생은 하나님께서 보좌형상 야심작을 만드시기 위해, 다섯 번 무너지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기어이 만들게 하셨음을
깨달았다. 선생은 하나님의 위대한 뜻과 구상에 뜨거운 눈물로 감사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의 대걸작, 돌조경 야심작 머릿돌에 선생은 다음의 글을 새겼다.
‘이 모든 구상은 하나님, 감동은 성령님, 생명보호는 성자, 기술 실천은 나와 제자들’
성자와 하루를 시작한다
선생의 하루는 ‘새벽 1시 기도’로 시작된다. 전날 바쁜 일들로 늦은 밤에 겨우 잠을 청했음에도, 성자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 기록하기 위해 고된 몸을 일으킨다. 목욕을 마친 후, 두 무릎을 꿇은 기도의 시작은 성삼위를 향한 감사와 경배의 고백이다.
인류의 구원과 속죄를 위해, 지구촌 평화와 생명의 보호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선생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사력을 다해 매달린다. 그는 이렇게 매일 하루 3번, 총 7시간여를 기도한다. ‘특별기도’를 할 때면 6, 7개월의 절식(絶食)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미 선생은 6개월 이상의 절식기도를 수차례 올렸다.
그 기도의 힘으로 이 시대 성자주님의 새 말씀의 인봉을 떼며, 그 진리로 구원받는 수많은 영혼을 보면서 선생은 모든 피로와 고통을 잊는다.
그의 음성을 듣고 깨닫고 기록한다
선생은 성자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매일 무릎을 꿇고 성자의 말씀을 받아 적는다. 그가 기록한 글에는 성삼위의 생생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했던 질문들 ‘나는 누구인가,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이 인간을 창조했나, 과연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가’ 등에 대한 확실하고 근본적인 해답이 씌어있다. 이렇게 매일 성자의 말씀을 받아 적으니 하루 두 자루의 볼펜도 부족하다. 이 세상 누구든지 선생이 쓴 성자의 글을 읽으면 자기 인생문제의 정답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현재도 선생은 집필에 여념이 없다. 이 같은 선생의 사랑과 헌신은 현재 세계 30여 국, 300여개 교회에서 생생하게 성자의 복음이 전파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95년 <문예사조> 신인상에 입상하며 등단했다.
1989년 시집<영감의 시>를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2013년 7월에 출간한 시집<시의 여인>,<시로 말한다>는 베스트 셀러가 됐다.
또 한국시문학 100년사를 총망라한 <한국 시 대사전(2011)>에는 선생의 시 10편이 등재되어 있다.
선생은 집필 외에도 매년 1000회 이상 설교와 강연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전해왔다.
영감의 메시지를
예술에 담다
성자주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영감(靈感)을 준다. 예술에 있어 영감은 특히 중요하다. 하늘의 영감을 표현할 때 보는 이에게 깊은 성찰의 감명을 주기 때문이다. 선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 후에는, 손가락으로 땅위에 그림을 그리곤 지웠다. 월남에서는 풍경화와 야자수를 자주 그렸다. 성자주님께 배운 말씀들을 도표로 그리면서
주님은 선생에게 미술적 구상을 주었다. 선생은 점차 성자의 메시지와 영감을 화폭에 담았고 그 결과 수많은 명작이 탄생했다.
한 호흡 한 획의 일필휘지
선생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일필휘지다. 한 번의 붓 선으로 인간의 다양한 표정과 눈빛, 사물의 움직임까지 강하고 섬세하게 완성해낸다. 선생의 작품은 국제대회에서도 인정받아 왔다. 2011년 ‘국제 아트 페어전’에서는 3,000여개의 작품 중 선생의 그림 ‘운명’이 대표작으로 선정되어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림 ‘운명’에서 달팽이는 자신을 잡으려고 응시하는 황새를 피해 필사적으로 벼랑 위를 달리고 있다. 선생은 “운명은 천명(天命)임을 표현했다. 성자주님의 구상과 영감을 받아, 숨 안 쉬고 순간 그려냈다”고 했다.
모든 인간은 절대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알면 작품이 된다
그의 작품은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신(神)의 뜻을 알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가르침이 보는 이에게 공명(共鳴)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성자주님을 알아야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있다. 주님을 알면 인간의 삶도 작품이 된다"고 했다. 선생의 작품들은 월명동 자연수련원 구상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선생은 그림 외에 서체, 도예 뿐 아니라 작사, 작곡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술을 전파해 감동을 줬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가르쳐왔다. 이에 현재 40여개 부문, 5000여명의 세계회원이 전문예술단으로 활동하며 각 분야에서 예술로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스포츠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예술이다. 스포츠는 하나님의 예술이다’ 이 또한 선생의 가르침이다. 선생이 1978년 6월 1일 상경해, 본격적으로 이 시대 성자의 복음을 전할 때 좁은 방에서 쉬지 않고 밤낮으로 말씀을 전했다. 결핵 및 각종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며 그들과 같이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도 폐가 급격히 나빠지고 말았다.
성자주님은 선생에게 새벽기도를 마치고 두 시간 가량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가까운 중학교 운동장에서 매일 뛰며 축구를 했다. 점차 건강이 좋아지며 강철 체력이 생겼다. 종일 축구를 해도 숨이 가쁘지 않았다. 6개월 후 의사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했다.
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가르쳐
성자주님은 선생에게 ‘스포츠도 예술이다. 축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하셨다. 선생은 하루에 6번의 축구경기를 하기도 했다. 매년 100~120회 경기를 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어떤 경기에선 골 20개를 넣는 표적을 보였다. 골키퍼를 5명 혹은 10명, 30명까지 세우고도 골인을 시켰다. 의심하던 자들도 선생의 지난 축구경기 영상을 보면 감탄을 한다. 선생은 축구할 때 축구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끄는 방법과 인생사는 방법 등을 주님께 배웠고 이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평화 축구’로 세상에 평화를
선생은 무엇보다 ‘평화 축구’를 강조해왔다. 상대팀을 이기려 하기보다 ‘평화와 화동, 건강’을 위해 뛰며, 상대선수와 공을 애인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정신으로 축구할 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에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전했다. 평화의 축구 문화를 일으키자 하나님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일본 공동개최,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선사해주셨다.
▶ 선생은 1999년도부터 매년‘국제평화축구대회’를 개최,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적극적으로 스포츠 자원봉사 활동을 독려했다. 또한 ‘세계아시아 평화스포츠대회’도 열어 세계인들이 스포츠와 문화를 교류하며 화합과 평화의 장을 마련해왔다.
사랑하면 평화가 온다
세계선교 길에서 성자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랑하면 평화가 오리라!” 1999년 1월, 성자는 선생에게 유럽으로 떠나자 하셨다.
선생은 그 뜻에 순종했다. 유럽은 기독교 국가들이 많지만 대부분 신앙의 열정이 식어 있었다. 더욱이 동양인으로 유럽인에게 다가서기란 쉽지 않았다. 선생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사랑과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그해 8월부터 프랑스, 독일, 이태리, 영국 등에서 동서양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문화와 예술, 스포츠를 교류하는 평화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 참여한 동시대 젊은이들은 역사에 뒤엉켜 있던 반목의 감정을 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화를 나눴다.
평화의 기도는 기적을
선생의 기도는 종교 평화의 길을 열었다. 1999년 10월 31일,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신부들과 대화를 나눈 후,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을 두고 선생은 기도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근본이 같음에도 서로를 반목하는 미움이 사라지길 간구했다. 이때 성자는 “천주교와 기독교는 싸울 것이 없다. 시대가 다르니 개성도 재능도 사명도 다를 뿐이었다. 이제 평화를 선포하니, 하나 되어 하나님과 나의 일을 하여라” 하셨다.
같은 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로마가톨릭과 루터파 개신교가 500여년 만에 화해예배를 드린 것이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교회에서 교황청 워원장 에드워드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티언 감독이 면죄와 구원에 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이날의 신ㆍ구교 화해예배는 세계 24개국 성직자 대표단을 포함해 700명이 참석했다. 주님은 이날 선생에게 신ㆍ구교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 하셨다.